고대인들의 철학은 인간의 본질적인 면을 탐구하고, 내면의 깨달음과 조화를 이루는 방법에 대한 귀중한 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습니다.
이 세상을 가장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자면 보이거나 만져지는 것과 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 없는 것들로 나뉠 수 있겠습니다. 보이는 것은 당연히 우리의 몸과 그것을 통해 보여지고 들리고 만져지는 모든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보이지 않는 것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그것은 내가 보고 듣고 만져서 알 수 있는 것을 제외한 모든 것이 거기에 해당합니다.
최근에 연구에 따르면 우리가 관측 가능한 우주에서 행성, 별, 은하, 입자 등을 포함한 일반 물질은 우주 전체의 약 4.8%를 차지한다고 합니다.
우리들이 나라고 생각하는 영역은 어디까지 일까요? 신체적인 경계. 예를 들면 피부를 경계로 나누는 것이 맞을까요? 아니면 개인이 영향력을 끼치는 범위일까요? 아니면 내가 인식하고 있는 모든 범위를 포함하는 것일까요? 저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나라고 인식되는 영역에서 육체는 아주 작은 부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우리가 육체와 정신의 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육체적 감각에 의해 만들어지는 모든 현상과 감정들은 사실 그 실체가 모호하다는 것을 머리로는 잘 알고 있으면서도, 끊임없이 밀려드는 정보의 홍수 속 현실의 많은 문제들과 감정의 파도에 휩쓸려 정신없는 일상을 보내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스스로의 정체성을 육체로 한정지어 느끼는 동안, 우리의 진짜 본질은 언제나 내면의 자아에게 있었습니다. 이 내면의 자아는 동양 철학에서 '진아'나 '본성'으로 표현되며, 그 안에는 우리 개개인의 고유한 생명의 근원 에너지가 흐르고 있습니다.
그러한 내면의 근원 에너지를 이해하고 개발하기 위해, 우리는 명상을 계속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명상은 내면의 평화와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창문이며, 그곳을 통해 생명의 본질과 근원적 의식을 탐구하고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고요해진 내면에서 '기'를 느끼며 호흡할 수 있습니다. 이 경험은 우리가 우주와 대자연의 섭리의 한 부분이며 동시에 그 자체라는 것을 자각하게 해줍니다.
누구나 그러하듯, 제가 처음 명상을 시작할 때도 처음에는 정신이 혼란스러워 평온함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지속적인 연습과 노력 끝에, 점차 명상을 통해 내면의 조화와 깨달음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내면의 깊은 곳에서 오는 생명 에너지와 의식의 조화를 느끼면서, 나는 자연의 원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을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실천하고자 하는 이 시대에 맞는 수행의 핵심입니다.
순환 명상과 기 수련은 그 근원적인 기를 느끼고, 우리 자신과 자연, 우주와의 일체감을 더 깊이 느끼고 이해하게 해줍니다.
그렇게 꾸준히 순환 명상과 기 수련을 통해 내면으로의 여행을 해 나아가다 보면, 어느덧 일상에서도 은은하게 흐르는 내면에서의 평온함을 느낄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는 감정에 휩쓸리지 않고 내면의 조화를 유지하며, 인생을 보다 의미 있게 살아가게 됩니다.
“나”라고 인식되는 것들 중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듯이, 우리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운전자처럼, 내면의 운전자로서 육체와 에고를 조종하며, 순환 명상과 기 수련을 통해 더 큰 깨달음과 조화를 찾아갈 수 있습니다.
감사합니다.